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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

(51) 그림자

by cubby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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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묘하다.

짧은 문장아니 단어 몇 개만으로 탄식의 맞장구를 치게 한다.

시인 월산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흰 여백이 그리도 넓어 보인다.

시 자체는 짧지만 강단있는 무엇을 토설한다. 제목이 무얼까

맞추어보라. “따라다녀도 짐이 되지 않는다 / 정오엔 작아지고 /

황혼이 임박할 땐 길어진다 / 그러나 / 밤이 오면 사라진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는 말이 있다. 삼국지 이야기다.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에 조조의 장수 사마중달이 총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제갈공명이 가마에 앉아 호령하는 모습을 보고

기세에 눌려 패하고 만다. 공명이 죽기 직전, 나무인형을 만들어

자기를 대신해 전쟁터로 보내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무인형이 실체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시무언이 사모(師母)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모는 수동적 존재다.

목회 중 목사의 일방적인 행동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럼에도

사모는 자기 주장 한 번 내세워보지 못한다. 십자가의 길이 따로

있겠나. 목사의 부인으로 부름을 받는 순간 참아야 하는 것,

이겨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한숨의 길을 넘어 눈물의 강을

건너 죽기까지 가야 하는…. 어찌 보면 죽음의 행로다.

 

헌신도 그런 헌신이 없다. “내 남편과 내 인생을 저 하늘에 바치고

사는 자가 사모다.” 돕는 배필이라고 말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성으로서의 배우자가 아니다.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돌봐야 하는 “어머니요 누나”가 더 맞겠다. 그러면서도

“사모는 평신도”라 하신다. 다른 일반의 교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가장 최근에 하신 말씀은 “사모는 그림자”다. 그렇다.

글머리에 소개한 월산 시의 제목이다. 따라다닌다고 해서 사모가

짐이겠는가. 오히려 힘이다. 한 몸이다. 남편 목사가 능력있게

사역할 때는 흔적없고 작아 보인다. 이때 사모는 지혜에 겸손을

더하고 사명에 인내를 곱한다.

 

혹 목사에게 어둔 그늘이 드리워지면 즉각 감싸준다.

거친 풍세과 높은 파랑(波浪)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둑 같다.

사모에게 이때만큼 커 보이고 넓어 보이는 때가 없다. 모든 비밀을

품어주고 오직 온화로 인내한다. 의지하며 기대는 곳은 오직

하나님뿐. 항상 무지개를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의지하고 산다.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목회를 위해 무릎 꿇는다.  

 

맞다.

그림자는 실상이 아니다. 허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거울이다.

사모는 목회자를 보는 거울이다. 목사의 환경이다. 사모를 보면

목사를 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목사와 다른 방향에서 목회를

돕는 위대한 여성이다. 설교만 모니터링하지 않는다. 강대상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고 듣는 목회자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솔직하게 돕는 동역자다.

 

사모가 그림자라는 말에 언짢을 수도 있겠다.

여왕 같은 영광의 자리로 생각한 사람이라면….  사랑보다는

아직도 미움을 받는 자리다. 수백 사람들의 눈과 입을 약한 몸으로

견뎌야 한다. 늘 감사하는 입술이야 한다. 틀린 흉을 듣더라도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그런 자리다. 그럼에도 단호하고 강해야

하는, 남편 목사보다도 더!

 

만물에 그림자가 있다.

회전한다.

빛따라 움직인다.

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붙여주는 태양도 그림자 때문에 잡아

먹힌다. 일식(日蝕) 말이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변함도 없으시고 영원히 확고하시다. 우리의

구원이, 말씀하신 약속이, 그러므로 확고하다.

 

사모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거다. 큰 것 아니다.

원대한 것 없다. 하나님만큼은 아니지만 실상인 남편이 진리를

향해 변치 않는 그 모습을 원할 게다. 하늘 나라를 향해 기도하고

전심전력을 다하는 그 심령을 원할 게다. 그림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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