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 거북이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다. 이솝 우화도 거북이가 느리다는 상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게임이라면 공정하게 진행을 했어야 했다. 뭍에 살던 토끼, 뭍보단 물이 더 좋은 환경인 거북이. 그렇다면 뭍만 아니라 물도 포함한 경주를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솝 우화가 나오지도 않았겠지. 과연 거북이가 느리기만 할까?
빠르다! 시무언의 하시는 일들을 보면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의 시집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삶의 여정>은 그의 삶이 아니었나. 이는 자서전적 시집이다. 그럼에도 시무언은 거북이를 이야기한다. <월산에 핀 진달래>에는 거북이 철학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강조점이 여럿이다. ‘칠십이 넘어서도 노력한다,’ ‘낮은 자세로 산다,’ ‘타인을 칭찬한다,’ ‘머슴살이로 마쳐선 안 된다,’ ‘침착하게 책임을 다하자,’ 등등. 하지만 최고 포인트는 “절대로 경쟁하지 말라”다. “경쟁하면 시기가 북받쳐 오르고 남이 한 일을 헐뜯게 된다. 그러므로 오직 거북이처럼 노력하라.”
열심을 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경쟁이다. 세상은 경쟁의 시대다. 아니 무한경쟁의 시대다. 경영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원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시킨다.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성과와 성공은 대단하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피를 말리고 뼈를 깎아야만 비로소 끝난다.
시무언은 부목사들에게 서로, 절대로 경쟁하지 말라 하신다. 열심을 내게 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강조할 수도 있겠다. 두 예배당을 비교하며 경쟁시키면 열심을 낸다. 그러나 서울성락교회라는 연합과 동역은 깨진다. 한 예배당의 부흥이 다른 예배당의 절망이 된다. 한쪽은 기쁨이, 다른 쪽은 슬픔이 넘친다. 기쁨을 시기하고 슬픔을 즐긴다.
성공과 성취와 관련한 내용이 전도서에 꽤 나온다. 허나 솔로몬이 말한다. 그런 수고도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그렇다. 경쟁하지 말자. 마음이 높아지면 타인과 경쟁하려는 마음이 든다. 경쟁은 부끄럼을 잉태하고 낙심을 낳는다. 뒤처진 사람으로 자신을 낙인하고 만다.
경쟁하지 않으면 다르다. 마음이 낮아지며 자신을 바라보고 노력하게 된다. 항상 감사하고 즐기며 인내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되니 좌절을 모르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게 참 신앙이다. 신앙은 경쟁이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다. 이게 거북이(龜)다.
애초에 경쟁심으로 가득 찼던 영적 존재가 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경쟁하려다가 음부에 처박힌 그는 마귀다. 그러니 마귀에게 속한 자는 경쟁하는 오만함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인자 예수는 경쟁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모든 뜻과 말씀을 존중하셨다. 예수의 보혈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면 된다.
처음엔 왕이 목동을 사랑하지 않았나. 왕 사울에게 경쟁과 비교의 영이 임하니 목동 다윗을 죽이려 한다. 경쟁의 마음이 가득했던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에게 주님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하셨다. 또 마리아에게 경쟁심이 있었던 마르다에겐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하셨다.
경쟁하지 말라는 말은 열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 그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에 목숨을 다하는 충성이 시무언이 말하는 ‘거북이’다. 그러고 보니 거북이도 경쟁을 한 것 같다. 오직 자기자신과의 경쟁 말이다.
서울 가는 기차를 보고 울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자신을 한탄했다. 마을 뒷산 월산에 올라가 거북이 모양의 구봉산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월산도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거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