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석 달
석 달은 약 백 일이 채 되지 못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길기도 하고 찰나 같기도 하다. 금식하던 일주일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고, 여행하던 석 달이 눈깜짝할 새 빨리 지나갔음을 느끼게 한다.
성경을 살펴보니 열왕기상의 왕들이 치리한 기간이 겨우 석 달뿐인 경우가 많고, 예수 모친 마리아가 출산 전 친척인 엘리사벳의 가정에 머문 기간이 석 달,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몰래 키웠던 기간이 석 달이었더라.
또 있는데, 이 경우에는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보낸 석 달이다. 바울의 유명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한 곳은 에베소. 이곳에서 천국을 가르친 기간이 석 달 동안이다.
어떤 신학자는 이 석 달 동안의 강론함과 권면함을 헬라어 원어로 분석, 현재분사형으로 쓰인 것에 중점을 두어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쳤다는 것으로 논문을 쓴 분이 있다.
또 다른 경우는 법궤에 관한 이야기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법궤 그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과 진배가 없었던 거룩한 성물로 여기는 것은 알 터… 그들의 역사를 훑어보니 법궤와 함께 했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었더라.
블레셋과의 전쟁 때인데, 전쟁의 시간이 지리하게 길어지니 법궤를 앞세워 전투에 나서는데 결과는 대패하고 만다. 블레셋이 전리품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법궤를 가져간다. 그런데 법궤가 가는 다섯 큰 도시마다 재앙이 일어나 결국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복을 가져다 주는 법궤가 아니라 재앙을 일으키는 법궤였던 것. 그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중에도 함부로 법궤를 본 사람들이 죽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아비나답의 집에 들어오고 20년간 안치된다.
다윗이 왕이 되고 법궤의 행방을 알고 기뻐한다. 법궤의 경호 및 수송부대로 삼만 명을 뽑는다. 그간 법궤를 보관한 아비나답의 두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총책임자가 된다. 도중에 법궤가 기울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웃사가 손으로 막으려다 즉사한다.
재앙이 또 시작된 것으로 여긴 다윗은 모시기를 두려워하고 법궤를 타작 마당에 버려 둔다. 이때 변두리의 문지기인 오벧에돔이 버리고 간 법궤를 자기 가정에 들이며 권속들이 정성을 다하여 모신다.
역대상 13장은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었고 “그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로 기록한다.
오벧에돔이 복 받았다는 소문을 듣게 된 다윗은 법궤를 모셔올 마음을 품는다. 필시 다윗은 법궤를 모셔오면서 아비나답과 오벧에돔을 비교하며 깊이 골똘했을 것이다. 특히 오벧에돔의 석 달을 철저히 꿰뚫어보려 정보요원을 파견했을지도 모른다.
‘법궤를 20년간 가지고 있었지만 아비나답은 “보관(방치)”만 했구나! 하지만 단 석 달 동안이지만 오벧에돔은 그 권속들 모두와 함께 전심전력으로 “섬기며” 모셨구나’하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20년 대 석 달이면 80배의 기간. 80배나 길게 법궤를 모셨지만 아비나답은 오히려 자식이 죽는 저주를 받았고 오벧에돔은 온 권속들이 복을 받았다.
해답은 길게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짧더라도 전심전력으로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하나님을 모시셔 섬기는 것이 중요했던 것.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섬김과 모심이 있을까?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단 석 달 동안만이라도 전심으로 모시려는 마음이 있다면… 단 석 달 동안만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섬김과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집중될 것이다.
석 달 동안만이라도 참 믿음과 진정한 사랑을 가진다면 오벧에돔과 그의 자손들이 받았던 축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석 달, 일평생의 삶 중에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그 시간을 다 모으면 석 달이 되지 않을까? 이 석 달이 여러분에겐 짧은가 긴가?
역대상 26장은 오벧에돔이 변두리의 문지기라는 것과 그 자손들과 형제들이 62명이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로 큰 복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출처: 생수의 강 제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