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만물

(56) 가시

cubby 2024. 3. 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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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시” 이렇게 된소리로 불러야 제 뜻이 느껴진다바늘처럼 뾰족하게

돋아 살갗을 깊숙이 파고든 그 느낌 말이다가시가 있는 곳이 많다

임새도 다양하고털이 조직적으로 변화된 고슴도치의 가시목구멍에 팍

박히는 생선 가시. 38선 철조망의 가시도 있고가정 매서운 사람의 입

속에서 튀어나오는 ‘까시’도 있다.

 

성경에는 가시떨기가시나무가시면류관으로 등장한다떨기는

무더기를 말한다곧 가시나무의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더부룩하게 된 무더기가 가시떨기다

 

 

하나님은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로 자신을 표현했다(신명기 33:16). “가시떨기에 떨어진

말씀” 이란 비유도 있다(누가복음 8:14).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세상 걱정과 재물과 현세의 쾌락에 눌려 제대로 신앙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시나무는 이스라엘 근역에서 쉬 찾을 수 있다제독(除毒)기능에

탁월한 헛개나무나 비타민의 왕인 대추나무같은 갈매나무 과()

속한다이스라엘의 가시나무는 키가 보통 2.5~3.5m대추와

찔레열매를 잘 섞어놓은 듯한 조그맣고 둥근 열매가 열린다맛은

별로다번식력이 아주 강해 떨어진 열매에서 얼마되지않아 싹이

떨기처럼 난다때문에 사막이나 광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갈증을

해소하려는 목동이나 지친 나그네에겐 새콤달콤한 간식거리다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아랍권에선 “가시나무 그늘 밑에서 먹고

마시고 낮잠도 잔다.”는 말이 아직 전해진다광야에서 자라는

나무치곤 큰 편이라 넓직한 그림자를 제공하기 때문이다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있다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러

이집트의 고센을 떠나 먼 땅 가나안으로 가던 중 요단강 건너편

‘아닷 마당’ 에서 쉰다 ‘아닷’이 가시나무다그들은 가시나무

아래의 넓직한 그늘에서 쉬었다(창세기 50:10).

 

예수께 씌워진 가시면류관이 등장하는 마태복음 27장이나 마가복음

15장을 보면 ‘희롱’이란 단어가 유독 눈에 띈다가시관에 대한

시무언의 설교를 듣고 나서부터다유대인의 왕이란 명패왕관 대신

씌워준 가시관홍포를 입힌 것과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치는 행동과

침 뱉는 것 등등은 최고의 회롱이었으리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주의할만한 점이 있다예수께서 죽으실 때까지

단 한번도 가시관을 벗지 않았다는 점이다십자가와 가시관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고난을 뜻해왔다골고다까지 가는 길이었지만

언덕배기에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갔다허나 가시관은 예수께서

빌라도 관정부터 시작해 운명하실 때까지 계속 쓰고 계셨다.

 

“이 가시관은 예수의 고민과 고뇌를 말합니다. 그동안 시무언은

“예수께서 두려워하신 것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계시지 않구나’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구나’하는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이 가는 것을

고민하셨습니다.”라고 설교했다하나님의 이름과 높임을 생각하는

마음이 시달려 괴로워하는 그 절정의 상징이 가시관이란 말이다.

마치 해골이 부서지는 것처럼 찌르는 고민과 번뇌의 가시관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뜻대로 고난을 받으려는 순종을 보이셨으니….

 

진정한 예수의 사람이라면 시간과 물질이 뺏기는 것이 당연하다.

맞다그것이 소중하고 귀한 것일수록 오히려 감사가 넘쳐난다.

허나 쓰임을 받기 위한 최종의 순간까지 괴로움과 번민과 고통은

이만저만 아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께서 쓰신

가시관처럼 큰 고뇌가 있을 수밖에 없다십자가 위에서 몇 시간

동안 육체의 고통으로 힘드셨겠지만 그보다 몇 갑절의 정신적 고통과

마음의 시달림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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