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노예선
아프리카라면 성락인들은 가나에 관심이 많다. 아프리카 중 첫 선교지요 현재도 김성용 목사, 존 아파즈 목사 등이 크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지도에서 가나를 찾아본다. 골드코스트(Gold Coast)란 이름이 크게 들어온다. 관광객을 매혹하는 햇살과 황금빛 그득한 백사장이 펼쳐진 곳일까?
1957년 3월까지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서 영어가 모국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까지 나라 이름이 없었다. 대신 골드코스트라 불렸다. 이유는 가나에 풍부했던 금(골드) 때문이다. 가나의 유명한 관광명소 건물들은 지금도 이렇게 증언한다. “이 건물이 금을 빨대로 쪽쪽 수탈해간 바로 그 자리다.”
세계사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부(富)가 유럽에 축적된 것은 이러한 수탈 때문이다. 좋게 표현하면 무역(貿易)이지만. 골드코스트처럼 금만 가져갔겠나? 가나 옆 나라의 이름은 코트 디부아르(Côte d’Ivoire). 영어로는 아이보리코스트로 상아해변이란 뜻이다. 상아 같은 연한 크림색의 아름다운 해변이란 뜻은 아니다. 16세기부터 약 300년간 유럽 열강들이 이 두 해안을 중심으로 금과 상아, 그리고 노예들을 가져갔었다.
시무언이 가나를 선교 차 방문했을 때 노예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노예들은 노예선의 밑바닥에 탑승되었다. 원래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를 조그마한 방으로 개조한 것이다. 방마다 200명씩 족쇄를 채워 짐짝 쌓듯 구겨 넣는다. 화장실이 따로 없고 대소변을 아무렇게나 해결해야만 했다. 기생충과 바퀴벌레로 인한 전염병은 극에 달했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25%가 채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로 팔려가는 중 살아남은 자들이 맨 처음 당도하는 곳이 현재의 아이티(Haiti)란 나라다. 이곳에서 건강한 자 곧 팔릴 노예와 팔리지 않을 병약한 자로 구별된다. 대서양을 건너오면서 죽은 자는 바다에 뿌려지고, 살아남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이 남은 곳이 아이티다.
그런데 안내원이 노예선 갑판 위에는 예배당이 있었다는 설명을 할 때, 설명이라기 보다는 오열과 절규로 들렸다고 한다. 갑판 아래에는 사람을 짐승이나 짐짝마냥 취급하면서 갑판 위에선 예배당을 지어놓고 예배를 드렸다는 그 절규와 같은 설명에 이율배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동등한 권리로 주장되는 두 명제가 서로 모순인 경우를 말한다. 성경으로 말하자면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과 위선을 말할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 이중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신앙에선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에는 세상을 살아갈 때 독사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명한다. 이는 이중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인 것을 말함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처럼, 오히려 공의와 은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율배반적인 사람이란 성령충만하다고 하면서 악한 사람을 말한다. 성령충만하다며 급한 듯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채근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모친이라”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을 똑같이 대하셨다. 아무리 기도와 구령을 해도 심령이 악하고 이중적이면 안 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온유하고 화평하며 사랑이 충만한 성품은 전도왕보다 중요하다. 교회의 부흥보다도 중요하다.
주 예수의 가장 신랄한 비판은 “독사의 자식들아”이었다. 성령으로 온유하고 성령으로 충성하고 성령으로 살아야겠다. 모든 악함을 버리고 성령으로 자기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가나 방문시에 시무언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품었다. “나는 아프리카의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진심으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갑판 위에만 예배당을 짓고 두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