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만물

(14) 도토리묵

cubby 2024. 2. 2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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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이야기는 성경에 없다. 대신 상수리 이야기는 31번 나온다. 2009년 6월 28일 서울성락교회 목사코너를 읽는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별하는 내용이 있다. 또 시무언의 영감을 따라 창세기의 상수리나무 이야기를 풀고 있다. 사실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 나무가 많은 산 입구면 식별하는 안내문이 있다. 무의도 호룡곡산 산길에서도 안내판을 봤다. 강서교인들과 함께 읽었다. 시무언의 설교가 생각나 사진으로 담아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안내판은 둘만을 구별하지 않는다. 동무들인 참나무속 6종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를 동시에 구별한다.

 

시무언은 둘을 이렇게 구분한다. “도토리는 키가 작다. 큰 나무들 숲에 묻혀 있다. 햇볕을 많이 받지 못한다. 자연적으로 잎이 넓적하다. 보통 어른 손바닥 둘을 합한 크기다.” 키가 작아 광합성을 원활히 하지 못하니 잎을 크게 함으로 큰 나무들과 경쟁을 벌여 생존한다는 이야기다. 키 작은 삭개오가 생각난다. 상대적으로 키 큰 무리들에 둘러싸여 예수를 뵐 수 없었다. 마침내 뽕나무 위로 올라간 일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이치인가 보다. 뭔가 부족하거나 약하면 꼭 이를 보충하려고 더 노력하거나 더 열심을 낸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 도 하나님의 배려가 아니던가. 결국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는…”(고후12:7)

 

상수리는 10미터 이상 크게 자란다. 잎이 작다. 어른 손바닥의 삼분의 일만하다. 도토리 열매는 작고 길쭉하다. 반면 상수리 열매는 둥글고 도토리의 두 배다. 시무언은 “시장에 파는 도토리묵은 대부분 상수리묵”이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수확량에서 도토리와 상수리가 너무 차이 나기 때문이다. “상수리 열매는 하루에 큰 나무에서 두 세 가마는 족히 주울 수 있다. 하지만 도토리는 한 컵도 못 딴다.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룬 곳이면 몇 달을 능히 살 수가 있다. 여러 식구가 큰 잔치를 벌이며 살 수 있다.”

 

아브람이 나그네 생활을 할 때다. 이미 갈대아를 떠났다. 하나님이 이끄신 곳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창13:18). 그는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꾼다. 아들 이삭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 약속을 받은 곳이 또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다(창18:1). 아브라함이 사라를 부른다. 여호와의 천사 셋을 대접하라며 “송아지를 진설하라” 그리고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지시한다. 시무언은 이때 대접한 떡이 상수리묵이라 짐작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당시에 흉년의 기갈이 컸었다(창12:10). 둘째 상수리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상수리열매는 흉년 때 더 맛있다. 가뭄이 심할수록 맛도 더 좋아지고 열매도 더 많이 맺는다. 다른 곡식이 풍성한 풍년이면 상수리열매는 맛도 그저 그렇다. 열매도 적다. 이게 상수리의 재미있는 특성이다. 경상도에서 상수리를 꿀밤나무라 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세종 때 굶주리는 백성을 담당하던 경상도 관리가 임금께 상서문을 올렸다. “왕이시여, 흉년에 대비할 구황식물로 상수리가 제일입니다. 그 다음이 소나무 속껍질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상수리가 있다. 아브라함을 인도하실 때 상수리 수풀에 두셨다. 아브라함은 상수리묵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모두 흉년의 때다. 지금 세상은 영적인 흉년이다. 물질과 인심도 흉년이다. 바로 이런 흉년 때에 상수리나무가 맛있고 풍성한 수확을 맺도록 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무얼까. 미혹케 하는 영과 영적 혼탁이 심한 요즘이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고 신령한 능력을 주시려는 것 아닐까. 아브라함을 마므렛에 두신 것처럼. 또 우리는 신령한 은사와 진리가 충만한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않을까. “나는 항상 그리하고 싶다.” 아브라함이 대접한 상수리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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