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문어
문어는 몸통 없이 머리에 곧장 다리가 붙어 있는 두족류(頭足類)다. 처음 보면 징그러운 인상이 아닐 수 없다. 괴물 같은 흡반과 흐물흐물한 피부, 또 위태로울 때 뿜어내는 검은 고락 때문에 외계인의 이미지에 곧잘 등장한다. 문어 외에도 이런 종류로 오징어, 골뚜기가 있다. 시무언은 어떤 때는 문어를, 베대원 사경회에서는 낙지를 예화로 들며 설교했다.
문어와 낙지는 영어로 둘 다 옥토퍼스(Octopus)다. 접두어 Octo-는 여덟(八)의 뜻인데 다리가 8개라는 뜻이다. 오징어도 다리는 여덟 개인데, 세어보면 다리처럼 생긴 촉완(觸腕)이 둘 더 있다. 촉수 같은 역할을 하는데 먹이를 잡을 때 더 길게 더 넓게 펼친다. 오징어와 비슷한 낙지의 가장 큰 차이는 머리 모양이다. 삼각형의 모자 같으면 오징어, 원형의 투구 같으면 낙지다.
문어와 낙지를 쉽게 구별하자면 큰 것은 문어, 작은 것은 낙지다. 그래서 문어새끼를 낙지라 말하는 주부도 있다. 문어는 불그스럼하지만 낙지는 희끄무하다. 문어는 100미터에서 1,000미터의 맑은 바다에 살지만 낙지는 주로 뻘에 산다. 스쿠버를 아직도 즐기는 군 동기에게 물어보니 가장 큰 차이는 눈이란다. 어릴 적 왕망울 같은 큰 눈을 가진 소처럼 문어의 눈에는 어떤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것.
여덟 개의 팔을 자유자재로 마구 움직이는 동작과 함께, 사람처럼 말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단다. 때문에 이 친구는 낙지는 즐겨 먹지만 문어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 했다. 그 까닭이 재밌다. 스쿠버를 하다가 큰 문어와 말 그대로 사투를 벌였는데, 문어의 강력한 다리가 온 몸을 휭휭 감을 때 아찔했고 힘을 쓸 수 없었단다. 마침 칼을 써 겨우 살았는데 그때 그 문어의 눈이 그렇게도 슬플 수 없었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란기라 새끼들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며 지금도 간혹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어떤 외국 학자들은 문어의 다리가 아니라 팔이라 주장한다. 뇌에는 비할 데 못하지만 자발적인 운동신경인 가뇌(假腦)가 팔에 있어 잘려도 한참 동안 움직인다. 하지만 산소가 공급을 계속해주는 동안만 그러하니 결국 머리가 제일 중요한 것.
시무언은 문어라는 천지만물을 통해 신자들 믿음의 뿌리를 강조한다. “문어처럼 다리만 예수에게 붙이고 머리는 여전히 세상에 두고 있는 사람이 적잖다. 문어 다리의 빨판(흡반)처럼 어찌나 세상에 관심이 있는지 아무리 강한 설교를 해도…” 문어가 먹이나 바위를 붙들고 있을 때 떼어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사람의 부드러운 살에 착 붙으면 얼마나 끈적하고 집요한 지 빨간 자국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문어 머리가 중요하다. 다리는 머리에 속해 있을 뿐이니, 보다 더 크고 넓게 펼칠 수 있는 두 개의 촉완으로 교회와 예수를 더 세게 잡을지라도 머리에 속한 것에 그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신들은 거짓말쟁이요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예수를 붙들어야 한다. 제자라도 세상을 끊지 못하고 죄에 머물렀을 때, 곧 유다에게는 “호 사타나스”, 베드로에게 “호 디아볼로스” 했다. 이는 결코 꾸짖는 말이 아니다. 머리가 아닌 다리만 예수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침례를 통한 세상과의 죽음 같은 단절, 보혈로 인한 죄에서 완전한 끊김이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침례를 통해 예수와 연합해야 하고, 말씀으로 인해 생명과 복을 받아야 한다. 온 몸은 결국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자라니(골2:19) 머리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하다.
세상은 우리를 속였고 영원히 속일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것으로 감사하지 말고 영원한 것으로 사모하고 영원한 것을 위해 헌신하자. 우리 신자들의 믿음의 뿌리를 하늘에 두자. “문어 머리를 예수 안에 두자.”